요즘은 외국인을 만나 한식(韓食)을 먹더라도 김치부터 시작해 비빔밥·불고기 같은 메뉴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상당수는 이미 한식을 먹어본 사람들이며, 이 중에는 한식 본고장의 맛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한식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한식진흥원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09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 중 64.4%는 이미 자국에서 한식당을 가봤다. 자국에서 한식을 먹어본 외국인의 85.8%는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한식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는 분명 예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식의 영향력이 조금씩 커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한식을 널리 알리고, 한식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한식진흥법'까지 만들어져 내년 8월 시행될 예정이다. 중식과 일식에 한참 뒤처졌던 'K푸드'가 이러한 분위기를 등에 업고 세계를 무대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지난 8년간 해외 한식당 3.3배 오스트리아 빈에서 금융회사에 다니는 닉샤 마르코바츠(38)씨는 한 달에 한두 번은 한식당을 찾는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된장찌개와 육개장·불고기·갈비탕 등이다. 직장 동료와 친구들도 한식당에 자주 데려간다. 마르코바츠씨는 "여러 식재료를 조합해 하나의 음식을 만든다는 점, 요리 하나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점, 다른 반찬까지 다양하게 나오는 점 등이 한식의 흥미로운 요소"라며 "한식은 많이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무겁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K푸드가 지난 수년간 급성장한 사실은 각종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해외 한식당 점포 수는 지난 8년(2009~2017년) 사이 9253개에서 3만227개로 3.3배가 됐다. 해외 호텔에 입점한 한식당 수도 3년(2014~2017년) 만에 37개에서 123개로 늘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한식을 맛있게 먹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한식진흥원은 지난해 세계 주요 16개 도시에서 총 9600명(도시 한 곳당 600명)의 현지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식을 먹어본 사람 중 93.9%는 "맛있었다"고 답했다. 16개 도시 중 만족도가 90% 아래인 곳은 일본 도쿄(82%)뿐이었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한식 만족도는 94.3%였는데 이는 7년 전인 2011년(34.5%)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한식은 구이나 튀김과 같은 외국인에게 친숙한 조리법은 물론 볶음, 무침, 찜 등 다양하게 조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많다"며 "된장, 김치 등 발효 음식도 많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도 제법 있다"고 말했다.
◇중국·동남아 중심, 비빔밥·치킨 인기
그렇다면 한식은 주로 어느 지역에서 많이 팔릴까. 또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뭘까. 한식은 유럽이나 미국·남미 등보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지난해 한식진흥원이 해외 16개 주요 도시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지인들이 한 번이라도 한식당을 가본 비율은 평균 63.1%였는데 두바이(91.5%), 베이징(83.3%), 자카르타(82.2%), 방콕(80.8%) 등이 상위에 올랐다. 반면 도쿄(27.8%)와 로마(39.8%) 등에서는 한식당에 가본 현지인이 많지 않았다. 해외에서 한식당을 찾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비빔밥(37%)이었다. 이어 치킨(27.5%)과 불고기(22.9%), 전골(20%), 잡채(17.8%)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갈비탕(6.9%)과 보쌈(7.8%)을 먹는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인기 메뉴는 나라마다 차이가 컸다. 한식당에 가본 현지인 비율이 높은 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두바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전체 인기 순위와 비슷했지만 베이징에서는 삼겹살(25.8%)과 냉면(23%), 찌개류(21%)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방콕에서는 닭갈비(20.6%), 자카르타에서는 떡볶이(16.6%), 파리와 런던에서는 전(각각 19%, 20.7%)의 인기도 높은 편이었다.
◇한식진흥법, 'K푸드'에 날게 되나
한식 세계화는 대체로 순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식은 여전히 아시아권을 제외한 유럽과 중남미 등에서는 중식·일식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않다. 또 외국인이 질 낮은 한식당에 들렀다가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은정 한경대 영양조리학과 교수는 "전 세계 한식당은 음식 맛의 표준화와 위생, 서비스 등의 문제로 글로벌화에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한식진흥법'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동안은 한식만을 위한 별도의 법령 없이 '외식산업진흥법'에만 근거해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한계가 많았다. 한식만 따로 떼어내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식진흥법이 시행되면 정부는 앞으로 한식 산업 관련 각종 부가 통계 조사를 할 수 있고, 한식 연구와 정보 체계 구축도 추진할 수 있다. 이재식 농식품부 외식산업진흥과장은 "한식진흥법 제정으로 앞으로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블루'와 같은 한식 전문 교육 기관을 통해 외국인 한식 셰프를 배출할 수 있고, 해외 우수 한식당을 정부가 지정하는 일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안 매운 닭갈비? 그런 메뉴 성공 못해"]
"한식의 현지화요? 한국적인 것을 버리면 그건 더 이상 'K푸드'가 아닌 국적 불명의 음식이 됩니다." 영국 런던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김종순씨는 "한식을 '덜 맵게, 더 달게' 만드는 식의 현지화가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전자 유럽총괄에 다니다가 3년 전 런던의 최대 번화가인 '피커딜리 서커스'에 50석 규모의 한식당을 열었다. 장사가 잘돼서 올해 5월에는 '윔블던'에 2호점도 냈다. 1호점은 점심·저녁식사 시간에는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김씨는 성공 비결로 "음식의 맛부터 서비스까지 한국적인 것을 고수한 점"을 꼽았다. 김씨는 "외국인 중에도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입맛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급자 중심의 현지화는 의미가 없다"며 "한식은 종류가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인 만큼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해물파전 등 다른 선택지를 추천하는 것이 '안 매운 닭갈비'를 먹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어설픈 현지화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에서 한식을 만든다는 환경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한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김씨는 덧붙였다.
김씨는 유럽에서 한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서비스'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님을 깍듯이 예우하고, 친절하게 메뉴를 소개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같이 술잔도 기울일 수 있는 '스킨십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지인들은 한식당에 올 때 맛만 느끼러 오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서비스까지 기대하고 온다"며 "한식당에 오면 다른 음식점을 갔을 때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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